호펜타운 반디멘 재단 도서관의 다른 이름은 ‘어디에도 없는 책들을 위한 도서관’이다. 이름 때문인지 어느 날부터 사람들은 직접 쓴 원고로 책을 만들어 도서관에 기증하기 시작했고 재정난과 장서 부족에 시달린 도서관은 기증받은 사가본으로 운영돼 왔다. 시 의회와의 협상 결렬로 재단은 도서관을 매각하기로 결정하고, 도서관 이용자들이 기증한 사가본은 가치가 없는 책으로 분류돼 모두 폐기될 운명이다. 도서관의 유일한 사서이며 도서관장 대리인 나는 책들을 원래의 기증자들에게 돌려주는 일에 몰두한다. 그런데 가장 열정적이고 유별난 기증자였고 자칭 작가이며 책도둑인 빈센트 쿠프만(VK)은 책을 찾아가지 않는다. 그가 기증한 책들은 모두 인터넷으로만 겨우 서지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희귀본들이다. 나는 조력자인 레나 문(LM)과 상의해 VK와 그의 책들을 기념하기 위해 카탈로그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그게 바로 이 책이다. 도서관 이용자들은 VK의 책들에 저마다의 사연으로 얽혀 있다. 한 일본인 여자는 건강한 에로티즘을 찬미하는 일본인 사진작가의 작품집 수서를 검토하던 나를 혐오스럽게 바라봤지만 내가 그녀의 딸을 사회복지사로부터 보호한 후로는 태도가 달라졌다.

비 오는 날이면 도서관에 찾아와 사가본 서가 앞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던 노숙자는 알고 보니 왕년의 유명한 라디오 디제이였다. 처음에 그를 질색하던 도서관 관리인 부부는 그에게 옷을 나눠 주고 화장실에서 샤워를 할 수 있게 했다. 킬러 같은 차림을 하고 VK의 요리책을 빌리려던 남자는 사실은 도서관을 인수해 식당으로 개조할 생각을 품고 있는 요리사였고 희곡과 소네트를 즐겨 읽는 멋쟁이 노인은 알고 보니 스탠드업 코미디언이었다. 호펜타운을 떠났다가 돌아온 고등학교 동창은 조용하고 음울한, 그러나 마음 한구석은 소녀처럼 쾌활하고 분방한 시인이 돼 있었다. 어느 날 마약 상인처럼 보이는 청년이 VK의 책을 훔쳐가자 LM은 그를 쫓아가 책을 받아온다. 청년은 랩 가사를 쓰기 위해 그런 짓을 했다며 사과했다. 공교롭게도 폐관식을 하기로 한 날 재단에서 나온 사람들이 재단 소유의 도서관 장서를 모두 회수해 간다. 책들이 떠난 텅 빈 도서관에 모인 사람들은 VK의 책들로 모의 경매를 하고, 낙찰받은 책을 서로 나눠 보며 그에 얽힌 추억을 나눈다. 나와 LM이 휴가를 다녀온 사이 VK의 책들이 모두 사라진다. 고장난 문을 뜯고 누군가 훔쳐갔지만 범인은 찾을 수 없다. 나는 마지막으로 VK의 행적을 쫓던 중에 그가 자신이 기증한 책들을 모두 직접 쓰고 그림을 그리고 제본해서 만들었다는 걸 알게 된다. 왜 그는 그 많은 책들을 직접 만들었을까. LM과 나는 다른 도시로 이사간다. 우리는 이삿짐 속에서 모의 경매에서 우리가 낙찰받은 책들을 발견한다.

오수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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