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졸중 남편 간병하며 집필 결심 돌봄 문제 직접 느낀 생각들 담아

명주·준성 인물 간 접점 형성 고심 주인공 마주한 현실 받아들이고
한발 더 내딛는 것 타 소설과 차이

등단한 후 조급할 때도 있었지만 제 속도로 지치지 않고 써나갈 것”


남편이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서울 중앙보훈병원 재활병동에서 75일 정도 입원, 치료를 받았다. 간병을 오롯이 홀로 책임져야 했다. 간병인을 쓸 수 없는 처지에, 팬데믹(감염병 세계적 대유행)까지 창궐하면서 가족 내의 교대조차 어려웠기 때문이다. 2020년 가을, 소설가 문미순은 한국 사회에서 간병 및 돌봄을 하는 가족들의 고통이 너무나 크다는 걸 절감했다.

간병 비용만 하루 10만원 이상 들기에 장기 간병이 필요한 경우는 대체로 가족이 간병을 대행한다. 아내나 어머니 등 여성이 맡는 경우가 많았고, 가끔 아들이나 딸이 하는 경우도 있었다. 문제는 시간과 영혼을 갈아 넣어야 하는 간병이 하루 이틀에 끝나는 게 아니라는 엄연한 현실.

간병과 돌봄 문제를 다뤄봐야겠구나. 일기 형식으로 간병을 기록하던 그는, 어느 날 문득 생각했다. 처음에는 재활병동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중단편으로 써볼까 생각했다. 하지만 다 아는 이야기 같았다. 간병과 돌봄 관련 책자도 읽어나갔다. 저출산·고령화 시대, 돌봄 사각지대, 간병 살인, 영케어러 문제….

그사이 재활병동에서 퇴원한 남편은 외래 치료를 다녔다. 남편이 통원 치료를 할 때면 병실 바깥에서 기다리며 작품을 생각했다. 이야기는 점점 커져갔고, 시놉시스도 계속 바뀌었다. 그러다가 극한 상황에 내몰린 여성이 죽은 엄마를 미라로 만들고 엄마의 연금으로 살아가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문 작가는 이듬해 봄부터 소설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3개월 만에 초고를 완성한 그는 퇴고에 퇴고를 이어간 끝에 거의 2년 만에 소설을 완성했다. 제19회 세계문학상 당선작 ‘야만의 겨울’ 이야기다.

2013년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해왔고 2021년 소설집 ‘고양이 버스’로 심훈문학상까지 받은 소설가 문미순은 왜 ‘야만의 겨울’을 써야 했을까. 문 작가를 지난달 18일 서울 용산 세계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이번 장편을 쓰면서 무엇이 가장 어려웠는지.

“명주와 준성이 서로에게 공감하게 해서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과정이 어려웠다. 소설 쓰기는 명주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준성이 이야기도 따로 만들어냈지만, 두 사람이 연대의 마음을 가지고 서로 이해하고 함께 나아가도록 하는 접점을 만들어내는 과정이었다.”


―기존 간병이나 돌봄을 다룬 소설과 다른 지점은.

“준성은 아버지가 죽고 외제차를 긁게 되면서 수천만원을 내야 하는 힘든 상황에서 극단적 선택이 아닌 자신의 삶을 끌어안고 앞으로 한발 더 내디딘다. 명주 역시 다소 비윤리적이라고 할 만큼 과감한 행동을 하지만, 결국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고 한발 더 나아간다. 기존 소설과 비교해 주인공들이 현실을 받아들이면서도 한발 더 나아가는 모습이 다를 것이다.”


―독자들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지.

“소설은 기본적으로 제가 간병과 돌봄 문제에 대해 느낀 것에서 출발했다. 간병과 돌봄은 지금 우리 사회의 큰 문제이다. 소설을 통해 우리 사회의 간병이나 돌봄 노동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1966년 이천에서 태어난 문미순은 2013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파양의 상처가 있는 여성과 사랑이 그리운 여학생이 과외를 매개로 교감하는 내용을 담은 단편소설 ‘고양이 버스’로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이때 그의 나이 만 마흔일곱. 그는 2021년 심훈문학상을 받으면서 첫 소설집 ‘고양이 버스’를 펴냈다.


―작가로서 포부가 있다면.

“등단한 뒤 몇 년은 다소 조급한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조급함만 갖고 되는 게 아니구나, 공부가 쌓이고 쌓여서 나오는 거구나, 라는 것을 깨달은 뒤에는 제 나름대로 뚜벅뚜벅 걸어왔던 것 같다. 계속 읽고, 쓰고, 고치며. 첫 장편을 다 썼을 때 기쁘기도 했지만, 마음이 차분해지는 느낌도 있었다. 나만의 속도로 계속 가면 되겠구나, 하는. 큰 포부를 갖기보다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사회를 담을 수 있는 소설, 당대의 소설을 나만의 속도로 나만의 역량으로 뚜벅뚜벅 쓰고 싶다. 꾸준히, 지치지 않고 쓰겠다.”




인터뷰 중간, 불현듯 나무늘보가 떠올랐다. 자신의 이야기를 지치지 않고 차분히 말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자신만의 속도로 지치지 않고 뚜벅뚜벅 써 나가겠다는 그의 다짐을 듣고 있노라면. 젊을 땐 감정 기복이 심했는데 지금은 외부 사건을 좀 더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는 그의 감정 진단을 듣고 있노라면.

그런데 나무늘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최고 시속 100㎞가 넘는 지상에서 가장 빠른 동물 중 하나인 아프리카 치타는 멸종위기동물 리스트 최상단에 올라 있는 반면, 시속이 300m에 불과한 나무늘보는 상대적으로 번성하고 있으니까. 세상사 속도에 좌우되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라는 걸 방증하는 근거일지 모르니까.

그 역시 우리 시대로, 자신의 삶으로 다가오는 수많은 현실과 비의와 고통을 받아들인 뒤, 정면으로 직시하면서, 달콤하고 쌉쌀한 이야기로 빚어내고 있었다. 천천히, 멈추지 않고,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그러니까 작가 문미순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한국문학 중심부로 다가오고 있었다. 천천히, 멈추지 않고,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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