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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세계청소년문학상 당선 직후부터 시작한 소설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운명의 족쇄에 맞서는 젊음 그려"


“가장 밑바닥서 분투중인 청춘들에게 바치는 헌사”

“새벽차를 타든, 지금 집에서 나와 심야 우등고속을 타든, 내일 오전 9시까지는 세계일보 문화부로 나와 주세요.”

28일 저녁 7시쯤 프레스클럽에서 당선자가 결정됐을 때, 조용히 심사장에서 빠져나와 광주에 사는 주인공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5회 세계문학상 당선자 정유정(43)씨는 이미 안면이 있는 인물이었다. 2007년 제1회 세계청소년문학상 당선자였으니, 그때 이미 인터뷰했고 시상식장과 뒤풀이 자리에서 대화를 나눈 대상이었다. 그가 이번에는 아들 이름 ‘공연성’을 필명으로 내세워 본격적인 ‘성인문학’에 도전했고, 예심에서부터 재투표를 거듭한 끝에 산 넘고 물 건너 수상의 영예를 거머쥐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침묵이 흐르더니, “당선… 된 거냐”고 울먹였다.

당선작 ‘내 심장을 쏴라’는 정신병동을 무대로 두 청년의 좌충우돌 분투기가 화려하게 펼쳐지는 작품이다. 현장의 리얼리티가 생생하게 살아 있고,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도 그러했지만 한번 빠져들면 끝까지 읽지 않고서는 책을 놓을 수 없는 흡인력을 자랑한다. 감동이 있고, 생에 대한 각성이 꿈틀대며, 무엇보다도 희망에 대한 끈을 다시 움켜잡게 만드는 마력이 깃든 작품이라는 평가다.

“2007년 7월 청소년문학상 시상식을 마치고 내려온 뒤부터 바로 시작한 소설입니다. 그때 여러 출판사에서 계약 문의도 들어왔고 여기저기서 청탁도 들어와 겉으로 보기에는 내 앞에 꽃길이 깔린 것 같았지만, 나 스스로 영토를 넓히지 않는 한 안주할 수밖에 없다는 비장한 각오로 곁을 주지 않고 달려왔습니다.”


정씨는 이 소설을 위해 그동안 정신질환에 관한 이론 서적을 방대하게 독파했지만 아무래도 현장의 리얼리티를 위한 취재는 부족한 것 같은 아쉬움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광주 기독간호대학을 나와 간호사로 일했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도 일했던 인연으로 선배의 소개를 받아 광주 인근의 한 정신병원을 다행히 취재할 수 있었다. 통상 개방병원만 보여주는데, 그는 외부인에게는 절대로 보여주지 않는 폐쇄병동에 들어가 1주일 동안 환자들과 생활하며 세세한 일상을 체험할 기회를 얻었다.

“처음에는 자신들이 정상이라는 제스처를 강하게 보여주더니 차츰 마음의 문을 열면서 사연들을 털어놓더군요. 가정에서 안 받아주는 이들도 있었고, 거리에서 마구잡이로 그물에 쓸려온 노숙자들도 있어요. 마지막 나오는 날 환자들과 기차놀이를 하면서 송별회를 했어요. 그들과 헤어질 때 눈물이 나대요. 창문 너머로 손을 흔들면서 ‘우리 한 좀 풀어 달라’고 외치는데 그들의 부탁을 들어줄 수 있을지 막막했습니다.”

정신병원에 있는 이들은 자신의 운명, 세상, 가족에 대한 분노가 많다. 그러나 정씨는 정신병동의 암울한 실태 고발이 이 소설의 목적은 아니라고 했다. 정신병원이란, 우리 모두의 보편적인 운명의 족쇄를 빗댄 상징일 뿐이라는 것이다. 우리를 옥죄는 이 운명과 어떻게 정면으로 대면하여 새로운 인생을 향해 당당하게 걸어나갈 것인지 쓰고 싶었다고 했다.

“요즘 20대들, 쿨한 척하지만 정작 무기력한 모습이 못마땅했어요. 인생이라는 게 안 된다고 그냥 포기할 성질이 아니잖아요. 가장 밑바닥에 있는, 분투하는 청춘들에 바치는 헌사가 바로 이 작품입니다. 죽을 힘을 다해 인생을 살아내는 그들에게 주고 싶은 소설이에요.”

청소년문학상 당선작을 쓸 때까지만 해도 스트레스가 쌓일 때마다 거실에 걸어놓은 샌드백을 치는 게 일상이었다는 정유정씨. 한 번은 힘차게 발로 찼더니 그 백이 부엌으로 날아가, 119 소방대 구조요원으로 근무하는 남편이 “한 번만 더 차면 가만 안 있겠다”고 엄포를 놓은 뒤로는 소설 속 등장인물의 야맹증을 체험하기 위해 아파트 인근 광주시 일곡동 삼봉산을 야간에 오르내리는 취미로 바꿨다고 했다. 이 당찬 여인도, 삼봉산 뒤편 동물원에서 호랑이가 울고 늑대가 우는 소리에 걸음아 날 살려라, 어두운 산길을 달려 내려왔노라고 얄밉게 웃으며 나약한 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