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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결혼했다! 이 단순한 문장이 1억원 고료 제2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의 제목이다. 결혼한 아내라면 필시 이혼한 전 아내를 일컫는 말일 터인데, 그 아내가 재혼하는 일이야 흔하디흔한 경우일 터인데, 도대체 무에 그리 호들갑을 떨 일인지 제목만으로는 쉬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않을뿐더러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아내는 남편과 이혼하지 않았고, 여전히 현재 남편을 사랑하며 남편에게도 사랑하는 다른 남자와의 중혼(重婚) 결심을 밝혀 결국 설득해 냈으며, 심지어 두 번째 결혼식 청첩장까지 보여주고 식장에 가지 않은 남편에게 결혼식은 무사히 잘 끝났고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보겠노라고 문자메시지까지 날린다. 남편은 바보라서 그 사실을 받아들였을까. 아니다. 저항할 데까지 저항하고 다양한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남자는 여전히 아내를 사랑하고 그녀와 헤어질 수 없을 뿐이다. 이 일견 ‘황당한’ 스토리를 작가 박현욱(39)은 경쾌한 문체로 축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연결시켜 끝까지 설득력 있게 끌고 나간다.

“처음에는 단순히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조금씩 생각을 확장시켜 나가다 보니 제도 자체에 대해 언급하고 싶어졌습니다. 여러 가지 다양한 대안이 있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합의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우리는 한 가지만 생각합니다. 이번 소설의 줄거리도 한국 사회에서는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어서 일종의 ‘판타지’인 셈이지만, 소설이 기본적으로 허구를 동원하되 그 안에 진실을 담보하는 장르라는 차원에서 허무맹랑한 판타지로만 치부할 수는 없습니다. 판타지를 통해서 보면 현 제도의 문제점들이 더 잘 보일 수도 있지요.”

심사위원들이 격론을 벌인 끝에 이 작품을 수상작으로 선정한 다음날 세계일보 편집국에 나타난 박현욱씨는 건장한 몸에 사색적인 눈매를 지닌 한국 사회의 평범한 남자였고, 아내가 없는 독신이었다. 그는 찬찬하면서도 논리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또박또박 밝혔다.

“연애 시절부터 아내는 자신의 자유로운 사랑관을 밝히면서 결혼을 거부했지만 남자는 사랑하는 여인을 독점할 수 있다는 통념적인 시각으로 떼를 써서 결혼을 성사시켰고, 끝없이 독점을 향해 나아가지만 적어도 소설이 끝나는 시점까지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합니다. 남자가 여러 가지 불합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아내와 헤어질 수 없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지요. 그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누구나 온전히 채워진 것보다도 채워질 듯 채워지지 않을 때 더 고조되게 마련인 감정 때문입니다. 그 감정도 사랑이냐구요? 결국 사랑입니다. 어떤 이는 특정한 감정만을 사랑이라고 주장하지만 사랑의 모습은 너무나 다양합니다.”

이 소설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분량은 축구에 대한 다양한 자료로 채워져 있는데, 매 장마다 그때그때 남편의 상황과 서글픔을 반영하는 데 교묘하게 기여한다. 왜 축구인가.

“사실 이 소설에서 행복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행복에 이르는 다양한 길이 있을 터인데, 결혼이라는 것도 남자와 여자가 결합함으로써 행복을 추구하려는 노력이 제도화된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한 가지만 생각하다가 그게 좌절되면 더 큰 타격을 받는 게 현실이지요. 이런 현실에서 이 소설의 기본 설정이 ‘판타지’이다 보니 리얼리티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축구를 동원했지요. 어느 것 하나 닮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로 축구는 인생사와 비슷한 점들이 많습니다. 때로는 뻘밭에서 뒹굴어야 하고, 모든 스포츠 종목에서 의외성이 가장 많은 경기이기도 하고, 겨우 한 끝 차이로 극과 극이 나뉘는 점들이 그렇습니다.”

새벽에 중계하는 ‘유로 2004’ 전 경기를 꼬박 밤을 새우면서 관전했던 박현욱씨는 연세대 사회학과 87학번이다. 6월항쟁으로 긴 독재의 시절에서 잠정적인 승리를 쟁취하고 학생운동권은 바야흐로 과격한 관념 투쟁으로 나아가는 지형에서 대학에 입학했다. 그 또한 사회학과의 분위기를 타지 않을 수 없었고 대열의 말미를 따라다니면서 당시의 시대정서를 수유했다. 이 소설이 가벼운 장난기와 부박한 세태에만 영합하지 않고 끝까지 읽어나가면 기묘한 슬픔과 인생에 대한 성찰이 개입되는 무게를 배면에 깔고 있는 한 이유일 것이다.

그가 문학에 뜻을 둔 것은 4년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서른 살 무렵이었다. 고교 시절까지 교양으로 읽었던 세계문학전집이 무의식에서 작동되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소설을 쓰는 데는 돈이 들지 않기 때문”에 1년여 동안 장편을 집필해 문학상에 응모해 습작 기간에 비해 ‘너무 빨리’ 당선되면서 문인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래서 그는 아직도 ‘소설 건축의 기본 공법’에 대한 갈증이 심하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남들 다 동원하는 공법으로는 천재 한 사람만을 요구하는 ‘예술’의 잔인한 속성 앞에서 좌절할 수밖에 없다. 무기교의 기교가 그를 차별화시킨 셈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서는 그에게 그래도 남는 석연치 않은 의문을 말했다. 소설 속의 남편은, 질투의 지옥 불을 견디어 나가야 할 그 슬픈 남자는, 그런 사랑을 하면서도 과연 행복하겠느냐고. 그가 던진 절묘한 대답은 이렇다.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같이 사는 부부보다는 행복하고, 온전하게 사랑하는 부부보다는 불행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