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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우주인이 되어 우주로 떠나게 된다. 그저 모든 것을 지우고 다시 시작하기 위해.

저스티스맨이 밝힌 피살자들의 공통점은 어설픈 ‘선’(善)을 빙자해 타인들을 다시는 헤어나올 수 없는 절망의 구렁텅이로 밀어넣는다는 점이다. 어설픈 ‘악’이 된 그들을 진짜 악이 나타나서 응징한다는 맥락이다. 이 피살자들은 어떤 죄를 지었을까. 살기 위해 발버둥치던 보험설계사가 회식 자리에서 만취한 채 길거리에서 택시를 잡다가 생리작용을 순리대로 해결하지 못해 화단에서 일을 저질렀는데 이 장면을 목격한 청년이 휴대전화로 촬영했고, 이 사진은 인터넷에 ‘뽀샵’처리되어 청정한 환경을 해치는 범죄자로 올라간다. 순식간에 ‘오물충’으로 낙인찍힌 이 사람은 한순간의 실수로 사회에서 매장되는 신세로 전락한다. 평범한 인간의 한순간 실수를 영원한 범죄로 만든 행위에 대한 응징을 첫 번째 피살자는 받은 것이라고 저스티스맨은 추리하고 분석한다.

“난 매일 빙글빙글 돌며 무중력 상태를 경험했지. 눈 떠 있는 시간의 반은 물속에 잠겨 있었던 거 같아. 현기증, 메스꺼움, 구토 그래도 이 모든 게 견딜 만했어. 왜냐면 현실에 돌아가는 거만큼 구역질나지 않았거든.”

로켓이 발사되고 ISS에 도착한 그는 섬광과 함께 정신을 잃고 우주가 아닌 지구와 똑같은 곳에서 깨어나게 된다. 그리고 그는 놀랍도록 지구와 똑같은 곳에서 샤넬의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를 만나게 된다. 그는 자신을 외계인라고 소개하며 이곳은 지구의 미의 기준에 따라 꾸며 놓은 거대한 세트장이라고 말한다. 자신 또한 지구의 미의 기준에 맞춰 변한 것뿐이라고. 그리고 지구를 본뜬 세계에 떨어진 주인공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하며 사라진다.

“앞으로 이 세계에서 편하게 지내길 바라네. 이 세계에 네가 모르는 말은 없으니까. 스페이스보이 이 말을 기억해? 언어의 한계란 사고의 한계다.”

이후 주인공은 이 낯선 곳에서 기묘한 체험을 하게 된다. 귀신처럼 자신의 속마음을 읽는 외계인과 그가 말한 익숙한 것들이 세계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익숙하지만 기억은 나지 않는 것들. 낯설었던 세계는 주인공이 전기숲에서 전자기타를 치기 시작하면서 점점 명확해져 간다. 그는 전자기타 사운드가 뇌에 가하는 전기자극이며 숲의 나무들은 그 자극을 받는 뉴런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마치 전기자극으로 치매환자의 기억을 살리는 것처럼 말이다.

그는 비로소 이 세계의 모든 사물들과 곳곳의 장치들이 뭘 의미하는지 알게 되고 어쩌면 이 세계가 자신의 뇌 속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번화한 도시가 돼버린 이곳을 떠나 세계의 중심부로 들어간다. 험난하고 구불구불한 고랑과 이랑을 지나 향기롭고 아름다운 정원을 마주치게 된다. 그리고 그 익숙한 향기들이 그녀와 함께한 모든 것들이라는 걸 알게 된다. 어쩌면 그가 여기에 온 이유 말이다.

“너 그거 알아? 모든 감각은 시상을 거치는데 후각신경만 기억의 뇌로 바로 연결되는 거. 그래서 냄새가 기억을 재생시키는 거래.”

그와 칼 라거펠트는 해마를 형상화한 끈적한 늪과 찢어진 그물(실제 뇌의 그물처럼 생긴 망상활성화계)에 들어가 기억을 지우려 한다. 그는 외계인 존재와 문명을 발설하지 않는 조건으로 모든 기억이 지워지지 않은 채 지구로 귀환한다. 지구로 돌아간 주인공은 이미 엄청난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그의 팔로어는 천만이 넘어가고 대중들은 그에게 열광한다.

그는 우주에서 되살아난 기억에서 무엇을 본 걸까? 그는 이제 자신이 싫어했던 가식적이고 속물화된 지구의 영웅이다. 톱스타와 열애설까지 터지는. 그리고 그는 어쩌면 우주에 간 이유였는지도 모르는 그녀를 만나러 간다. 과연 그는 그의 사랑을 되돌릴 수 있을까? 아니면 영원히 망각되지 않을 기억 안에서 살게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