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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잠시 헤어지는 것… 무겁지 않게 풀어보고 싶었죠”


문예지 두 곳에 동시에 당선돼 등단한 이듬해인 2017년부터, 장편소설을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 단편소설만으론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였다. 무엇을 쓸까. 우선 어릴 적 보았던 죽음이 떠올랐다.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 알지만, 자신 역시 죽는다는 건 잘 느끼지 못하는.

그러니까, 상여가 빈번히 나가던 열 살 무렵의 어느 봄날, 꼬마는 무서우면서도 상여를 따라나섰다. 상여를 태우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는 죽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왜 죽어야만 하는가, 하는 의문을 어릴 때부터 품게 됐다.

“죽음에 대해 쓰자면 너무 무거울 것 같았고, 실제로 기존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무거웠는데, 요즘 20대의 시각에서 가볍게 풀어보고 싶었어요. 취업난으로 계속 알바를 하는데 알바마저 어려워서 장례식장 알바를 하면서 죽음을 접하게 되는 이야기를.”

한참 작품을 쓰고 있던 2019년 어느 날, 소설가 고요한은 버스를 타고 목동 거리를 지나다가 상도동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신부가 혼자 걷는 모습을 봤다. 서둘러 버스에서 내린 뒤 신부와 함께 차를 마시며 마주 앉았다.

“솔직히 죽음이 두렵습니다, 신부님은 죽음이 두렵지 않으십니까.” 그가 이렇게 물은 것은, 죽음에 대해 신앙인은 속인과 다르게 생각할 것 같기도 하고, 함께 이야기해보면 뭔가 정리가 될 것 같아서였다. 신부의 의외의 대답에, 그는 비로소 죽음을 조금 가볍게 볼 수 있었다.

“그게 뭐가 두렵습니까, 죽음은 잠시 헤어지는 것일 뿐입니다.”

취업난을 비롯한 청춘남녀의 고뇌와 서울 밤의 풍경, 죽음의 문제 등을 인생론적 차원에서 유려한 문체로 풀어낸 제18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인 고요한 작가의 ‘우리의 밤이 시작되는 곳’은 이렇게 태어났다. 작품은 장례식장 아르바이트를 하는 재호와 마리를 중심으로 서울 밤의 다양한 풍경과 소소한 사건을 만나면서 죽음의 트라우마는 물론 취업을 비롯한 청춘의 외로움과 고뇌를 극복해가는 일종의 청춘 소설이다.

작품은 심사위원단으로부터 “이 시대를 흐르는 공기의 무게를 가늠하는 기준으로 손색이 없다”며 “무게감 있는 소설”이라는 상찬을 받았는데. 이미 소설집과 장편소설을 한 권씩 펴낸 기성 작가 고요한과 그의 작품은 어떻게 세계문학상 심사위원단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자유를 상징하듯, 청바지를 입고 나타난 고 작가를 지난 18일 서울 용산구 세계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2017년 시작했다는데,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좀더 가볍게 접근하고 싶어서 20대의 감정을 끌어들여서 썼다. 서대문을 배경으로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며 풍경 스케치와 자료조사 그런 것들을 더했고, 죽음의 사유와 심리를 넣다보니 더 고심해야 했으며, 정적인 문장에 힘을 쏟으면서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소설의 배경은 시간적으론 현재이고, 공간적으론 서울의 장례식장인 것 같은데.

“서울 강북삼성병원의 뒤에 장례식장이 하나 있는데, 언젠가 그 장례식장에 조문을 갔다가 벚꽃이 피어있던 모습이 기억에 남았다. 벚꽃이 환하게 피어 있으니까, 더 슬프더라. 그 부근에는 홍난파 생가도 있고, 역사박물관도 있다. 제가 일하는 곳을 배경으로, 잘 아는 공간을 배경으로 해보자는 마음에서 그 일대를 배경으로 쓴 것 같다. 일차적으로 배경을 잡고 나니까 사건이나 이야기들이 잘 풀린 것 같다.”


―주인공이 청춘인 재호와 마리인데, 어떻게 나왔는가.

“(인물을 먼저 만든 게 아니라) 장소나 배경, 죽음에 대한 스토리를 이렇게 해야겠다고 생각하니까 인물이, 재호와 마리가 순간순간 튀어나오더라. 이번 소설은 이야기가 먼저 된 것 같다. (재호와 마리는 어떤 인물인가) 재호는 십대부터 죽음을 생각한 저의 모습이 많이 투영된 것 같다. 마리의 경우 공무원이 되고 싶어 하지만 되지 못하고 도박하는 아버지에게 돈을 대주는 인물로, 우선 이름부터 맘에 들었다.”


―전체 이야기나 터닝 포인트가 될 만한 사건은 무엇이 있나.

“전체적인 이야기는 두 주인공이 서울 시내를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죽음의 트라우마나 알바 인생에 대해 고충 등을 극복해 가는 것이다. 우선 밤마다 오토바이를 타고 서울 시내를 배회하던 재호가 같이 알바를 하는 마리가 맥도날드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 함께 돌아다니게 된다. 또 누나가 죽은 뒤 하얀뱀을 보는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재호가 엄마에게서 누나가 자신의 목조르기가 아닌 소아암으로 죽었다는 걸 알고서 마리와 함께 사실 확인을 나서기도 한다.”


―앞으로 어떤 작품을 쓰고,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은지.

“저는 글을 쓸 때 문장에 치중하고, 저만의 상상력에 치중하는 편이다. 문장과 상상력으로 기억되는 작가, 고요한 하면은 색채가 있는 작가로 남고 싶다. 고통스럽지 않으냐고 묻기도 하는데, 저는 고통스럽다고 생각한 적이 없고 늘 즐겁게 썼다. 소설을 쓰면서 제 상상력의 끝은 어디까지인가 늘 궁금하다.”

지치지 않고 즐겁게, 자신만의 독특한 상상력과 색채, 문장으로 한국 문학의 숲길을 달려보고 싶다는 작가 고요한. 그가 가는 길에 세계문학상이 헤드라이트 불빛이 되고, 반짝이는 강물에 달려나온 달빛이 되길. 그리하여 그와 한국 문학 모두 달빛을 타고 저 멀리 날아오르길. 그의 소설처럼, 하늘로 날아오른 재호의 오토바이처럼.

“도로 위에는 오토바이의 헤드라이트 불빛만 보였다. 한참을 달리자 오른편에 있는 강물이 반짝였다. 순간 어둠 속에 숨어 있던 달빛이 내려와 액셀을 잡아당겼다. 바퀴가 살짝 떠오르면서 오토바이는 달빛을 타고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