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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역사학자 이종욱 교수(서강대 사학과)에 의해 공개된 남당 박창화의 필사본 ‘화랑세기’는 아직도 첨예한 진위 논쟁에 휩싸여 있는 상태다. 본래 ‘화랑세기’는 신라 화랑의 우두머리 풍월주 32명의 전기다. 신라 성덕왕 때의 학자 김대문에 의해 저술되어 ‘삼국사기’ 등의 사서에 부분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바 있는 ‘화랑세기’는, 신국(神國)으로서 신라의 모습과 그들 특유의 신국의 도(道)를 밝힌 독특한 저작이다.

하지만 학계의 진위 논쟁 중에는 이러한 ‘신국의 도’가 지나치게 음란하고 방종하다는 것이 ‘화랑세기’를 악의적인 위작으로 판명하는 한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극히 제한된 금석문과 사료를 가진 고대사를 중세적 도덕관으로 재단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야말로 그 시대를 실제로 살아본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으므로, 고대사는 여전히 우리의 무한한 상상력과 탐구를 요구한다. 이 소설은 ‘화랑세기’를 주된 질료로 하여 쓰였다. 나는 오로지 1500년 전의 그들을 작가로서 이해할 뿐, 판단하거나 비판하지 않았다.

‘화랑세기’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여인 미실은 지금 우리 식의 도덕으로 해명할 수 없는 인물이다. 미실은 왕과 그 일족의 부인을 공급하는 계통으로서의 인통(姻統), 그 중에서도 대원신통의 여인으로, 진흥·진지·진평왕 3대를 색(色)으로 섬겼을 뿐만 아니라 숱한 남성들과 염문을 뿌린 우리 역사상 보기 드문 ‘팜 파탈’이다. 스스로 권력을 얻어 전주(殿主)와 새주(璽主:옥새를 관장하는 지위)로서 내정을 장악하고 화랑도의 원화(源花)가 되는가 하면, 진지왕의 폐위에 중심적으로 관여하기도 했다.

미실의 부침과 인생 역정은 조선조 이후 급격하게 하락해야 했던 여성의 지위와 역할이 본디부터 그러하지는 않았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비록 뛰어난 미모를 무기로 삼기는 했으나 미실은 언제나 스스로의 본능에 충실했고 운명에 굴하지 않는 용기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그녀에게 기꺼이 복종한 신라의 신실한 사내들은 남성미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보여준다. ‘화랑세기’의 신라는 음란하고 방종한 나라가 아니라 아름다움을 섬기고 모시는 신국이었고, 미실은 그 신국에서 사랑으로 천하를 얻은 여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