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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에 무뎌진 세상… 소설로 인간성 회복 이끌고 싶어”


“당선 연락을 받고 난 뒤 머릿속이 하얘져서 대상인지 우수상인지도 몰랐어요. 사실 오늘 여기 올 때까지도 확신이 없었습니다. 이런 일이 생기다니, 여전히 꿈을 꾸는 것 같습니다.”

13회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자로 선정된 주인공은 지난해 말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한 도선우(46)씨였다. 다른 이름으로 응모했던 그의 신분이 확인된 후 심사위원들 사이에선 작은 탄성이 일었다. 올 초 수상작 ‘스파링’을 출간해 화제가 되고 있는 이가 불과 한 달여 만에 장편 ‘저스티스맨’으로 다시 세계문학상 수상자가 된 것이다. 당선 통보 다음 날 세계일보 편집국에서 만난 도씨는 “연달아 수상하리라곤 전혀 기대를 못해 정말 놀랐다”면서 “대상을 받은 게 맞느냐”고 거듭 물었다.

“점점 세상이 복잡해지니까 뭐가 잘못된 것인지조차 모르는 세태가 돼가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이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숨어 있는 것들을 보여주면서 주변에 늘 있는 일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게 해야 잘못을 저지른 사람도, 저지를 사람도 경각심을 가질 수 있을 겁니다.”

대상 수상작 ‘저스티스맨’은 한 사람의 무책임한 행동으로 인생이 망가진 남자가 연쇄살인을 벌이는 이야기다. 살인 방법은 동일하다. 이마에 두 개의 탄알 구멍이 난 상태로 시신이 발견된다. 경찰이 제대로 사건을 밝혀내지 못하자 누리꾼들이 나서고, 그들 중 ‘저스티스맨’이라는 자가 나타나 온갖 자료와 논리를 동원해 살인의 인과관계를 밝혀 나가면서 인기를 끌지만 그이조차 정의로운 건 아니었다. 흡인력이 강한 이 소설에 빠져들다 보면 정의란 무엇이고 선과 악은 어떤 경계에 놓여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우리 시대 인터넷 문화의 다양한 해악이 드러나면서 폭력에 무감해진 현대인의 민낯도 선명해진다.

“인간이 인간을 개인적으로 단죄하게 되면 무법천지가 되겠지요. 그렇지만 너무나 뻔뻔하게 죄가 없다면서 걸어나가는 힘 있는 사람들을 어찌해 볼 수 없는 세태에서 누구나 그런 불온한 욕망은 한구석에 숨겨두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조금만 돌아보면 진실을 알 수 있는데 자신에게 전달된 정보만 보고 낙인을 찍어버리는 온라인 문화도 심각합니다.”

도선우씨는 통상적인 문학 지망생들과는 사뭇 다른 길을 걸어왔다. 대학에서 관광경영을 전공하고 20대 초반부터 다양한 사업에 매진하다 37세 때 처음으로 소설이란 걸 접했다고 한다. 그는 “그 전까지는 심지어 ‘무협지’조차 본 적도 없고 사무실에서 누군가 소설이라도 보는 걸 발견하면 그 시간에 차라리 시사주간지라도 찾아보라고 질타할 정도였다”고 했다. 그러한 그이가 두 번에 걸친 부도를 거쳐 극도로 소진된 상태에서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우연히 읽기 시작하면서 주인공 홀든 콜필드의 상태에 자신의 처지가 이입돼 많은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문학이라는 게 이런 힘이 있구나, 이런 세상이 있었구나 싶어 그는 이후 독서광이 되었다.

1년에 평균 200~300권을 독파하며 자신의 블로그에만 지난해 말까지 2000개의 서평을 올렸다. 처음 1년 동안 미친 듯이 읽어나가자 차츰 쓰고 싶은 생각이 들어 2008년 처음 응모했던 단편이 본심까지 올라갔다. 자신이 써도 된다는 사실에 고무된 그는 낮에는 직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읽고 쓰는 ‘덕후’가 되었다. 문학상에만 40여 차례 응모했다가 떨어지자 처음 단편을 본심에 올려준 심사위원을 응징하고 싶을 정도였다고 한다. 드디어 지난해 말부터 문운이 터지기 시작한 것이다. ‘저스티스맨’은 그 첫 단편을 개작한 네 번째 장편소설이다. 문학동네 수상작 ‘스파링’이 한 권투선수의 행로를 통해 사회의 구조적인 폭력을 응시했다면, 이번 수상작 ‘저스티스맨’은 보다 생동감 있게 각 개인들의 폭력을 다룬 셈이다. 미국의 추상표현주의의 기수 잭슨 폴록의 그림이 소설에 등장하며 각 작품들 제목이 소제목으로 차용됐다.

절친한 친구들과 무역업을 하고 있는 도씨는 인터뷰를 마친 이틀 후 미국으로 2개월가량 사업차 떠난다고 했다. 이번 비즈니스가 잘되면 전업작가의 꿈을 이룰지도 모른다며 기대감을 감추지 않는 도씨는 “감추어져 있거나 가면을 쓰고 있는 폭력을 폭로해서 사람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할 것”이라며 “폭력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는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제 소설을 통해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