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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고의 고료를 내걸고 한국문학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제정된 제1회 세계문학상 첫 당선자가 탄생했다. 사랑으로 천하를 얻었던 신라의 여인 ‘미실’과, 그 여인을 소설로 새롭게 환생시킨 작가 김별아(36)가 그 주인공이다. 천년 세월을 뛰어넘어 21세기 한국 땅에서 두 여인이 만나, 세계문학상의 첫 문을 열어젖힌 것이다. 200자 원고지 1500장 분량의 당선작 ‘미실’은 ‘화랑세기’에 등장하는 여인으로, 색공(色貢)을 통해 당대의 권력자들을 휘어잡고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를 향해 자유롭게 다가갔던 여인의 기록을 힘차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살려낸 작품이다. 당선작이 결정된 후 작가 김별아(36)에게 수상 사실을 통보했을 때, 그는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여러 차례에 걸쳐 거듭 당선사실을 확인해주자 그제야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다음날 세계일보 편집국에 나온 김별아는 지난 밤 내내 잠을 설친 탓인지 눈이 붉게 충혈돼 있었다. “어제는 전화받고 기뻤지만, 오늘은 너무나 부담스럽습니다. 지나친 겸양이 아니라 그저 조용히 늙어 죽을 때까지 글을 쓰는 게 제 꿈이었는데, 갑자기 큰 격려를 받고 보니 당황스럽네요. 지금까지 한 번도 이처럼 큰 격려를 받으리라는 기대는 하지 못했거든요.” 당선작은 오늘날 우리네 가치 기준으로는 수용할 수 없는 신라시대 여인의 극히 자유롭고 생물학적인 사랑 행태를 따라간다. 김별아는 고대사에서부터 근세사까지 역사 관련 서적을 오랫동안 탐독해 왔고, 서구 문명사에 대해서도 흥미를 갖고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 결과가 ‘미실’로 탄생한 것이다. 3년여의 자료 조사 끝에 지난해 8월부터 세계문학상을 목표로 집필을 시작해 마감일 직전까지 이 소설에 매달렸다. “미실이라는 여인을 알게 된 순간, 우리나라 여성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던 캐릭터라는 사실을 직감했지요. 수많은 남자들을 거느렸는데 그 남자들은 대부분 미실을 향한 일부종사로 일관했고, 심지어 미실을 위해 대신 죽기까지 합니다. 열정과 순정이 넘치는 아름다운 남자들이지요.” 김별아는 1969년 강릉에서 부부교사인 부모의 1남1녀 중 맏이로 태어났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성장했고,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김남정·현재 태백시 교육장)가 사다 준 금성출판사판 세계명작전집을 밤새워 읽기 시작한 이래 책벌레가 되었다. 고교 시절 장래의 희망을 구체적으로 소설가로 설정했고, 대학에 입학하기 전에는 작가가 되기 위한 체험의 중요성에 대한 강박 때문에 버스안내양 아르바이트까지 자청했다. 대학 시절에는 총학생회 간부로도 활동했고 대학을 졸업하면서 따로 등단 절차도 밟지 않고 무작정 소설집 ‘신촌 블루스’를 펴낼 정도로 당찬 기질을 발휘했다. 정식 등단을 권유하는 주변의 뜻에 따라 1994년 ‘실천문학’에 중편 ‘닫힌 문밖의 바람소리’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으니, 등단 만 10년 만에 중요한 문학인생의 고갯마루에 올라선 셈이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것은 문화의 힘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고구려는 자기 문화를 소중하게 상승시키려는 노력이 부족했고, 백제는 온유하지만 칼날까지 둥글게 만들었던 유약함이 보이는 데 비해 신라는 자유분방한 성적 에너지를 슬기롭게 승화시켰던 것 같습니다. 미실이라는 여인상은 극단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조선시대 이래 교육받아온 선입견만 버리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어차피 삶이란 먼지처럼 스러져가는 것인데, 솔직하고 자유롭고 편견 없는 삶을 살아갔던 우리 선배들로부터 새로운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1994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결혼한 뒤 경기 과천에서 살고 있는 김별아는 아들 혜준(9)을 아침에 학교에 보낸 뒤 서울대공원 호숫가를 한바퀴 돌다가 들어와, 다시 아들이 하교할 때까지 집필에 매달리는 단순한 생활을 반복해 왔다. 그 단순하고 집중된 환경에서 역사와 문명서적을 탐독하고, 한 번도 일단 세워놓은 집필계획은 어겨본 적이 없을 정도로 집요한 스타일이다. 토마스 만이나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작가를 좋아하는 그는 책도 두꺼운 게 아니면 도전할 흥미가 그다지 생기지 않는다는 당찬 여인이다. 당선의 흥분도 잠깐, 그는 벌써 지금 계획 중인 새 장편을 위해 다시 마음을 가다듬는 중이다. 평가는 독자와 평자들에게 맡기고 조용히 제 갈 길 가기 위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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