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청춘, 시대마다 변하는 ‘무게감’ 가늠하는 기준 돼”
사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강영숙 소설가, 하성란 소설가, 박혜진 평론가, 정홍수 평론가, 은희경 소설가, 최원식 평론가 겸 심사위원장, 권지예 소설가 무게감은 ‘무게’라는 물리적인 개념과 ‘감’이라는 심리적인 인상이 결합된 아이러니한 말이다. 우리는 종종 ‘무게감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거나 ‘무게감 없이 굴었다’는 식으로 가치 있는 존재로 평가받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는데, 무게감이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곧잘 적용되기 때문이다. 무게감을 결정하는 것은 그 시대의 공기다. 공기가 끝없이 흐르는 것처럼 무게감도 언제나 변한다. 그렇다면 항상 변하고 있는 그것을 어떻게 가늠할 수 있을까? 소설을 통해 가능하다. 소설은 한 시대의 무게감을 결정하는 공기다. 우리가 기후를 살피듯 소설을 살펴야 하는 이유는 그 시대의 무게감을 결정하는 공기가 소설의 언어를 통해 표현되기 때문이다. 어떤 소설은 무거웠고 어떤 소설은 가벼웠다. 여느 때보다 무겁게 하기와 가볍게 하기의 힘겨루기가 짙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소설이 무게에만 골몰하는 듯했다. 심리묘사로 일관하며 증발하는 작품은 그저 가벼웠고 자의식 과잉으로 흐르며 침전하는 작품은 그저 무거웠다. 중요한 건 무게가 아니라 무게감인데도 말이다. ‘무게감’ 있는 작품은 가벼운 듯 무겁고 무거운 듯 가볍다. 사실상 무게감이란 무게에 대한 기존의 개념을 전복함으로써 무게를 획득한다. 무게에 골몰하는 작품들 사이에서 무게감 있는 작품을 발견하고자 했다. 본심 대상작은 ‘기울어진 운동장’ ‘방문 교사’ ‘천국의 나무’ ‘우리의 밤이 시작되는 곳’ ‘자미 미로’ ‘비밀’ ‘너희들이 행복해서 나는 우울했다’ 등 모두 7편이다. 그중에서도 집중적으로 논의된 작품은 ‘방문 교사’ ‘천국의 나무’ ‘우리의 밤이 시작되는 곳’ 3편이었다. ‘방문 교사’는 학교폭력, 청소년의 명품 소비 등 세대와 세태를 반영하는 핍진한 묘사들이 눈에 띄는 작품일 뿐 아니라 문제적인 인물을 통해 간파될 수 없는 인간의 욕망에 대해 질문하게 만드는 작품이기도 했다. 작중 ‘방문 교사’로 등장하는 인물은 ‘방문 교사’에게 기대되는 제한된 역할을 초과하며 자신의 학생과 긴밀한 관계를 맺지만 그러한 관계는 비극적인 어긋남으로 귀결된다.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힘, 예외적 관계를 가능하게 했던 과거사와 복잡한 욕망이 지닌 장점이 분명했다. 그러나 소설의 무게감은 흡입력 있는 전개와 흥미로운 반전뿐 아니라 결말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주제 의식을 통해 완결된다. 읽히는 이야기 너머 읽어야 하는 이야기에 대한 고민도 필요해 보였다. ‘천국의 나무’는 천년수를 중심으로 지난 100년 동안 전개된 한국 현대사를 압축해 보여 주는 작품이다. 무관한 것처럼 보이는 일련의 사건과 인물들의 에피소드가 나무를 중심으로 연결되는 플롯이 거대사와 미시사를 다루는 역사 소설의 기법을 잘 구현하고 있다. 그러나 구성과 구조를 지나치게 의식한 듯 보이는 우연과 그러한 우연의 반복이 자아내는 작위성은 못내 한계로 지적되었다. 소설에 존재하는 좋은 우연은 분명히 있다. 우연이야말로 인생에 개입하는 가장 강력한 ‘보이지 않는 손’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우연의 힘은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존재할 때 가장 실제적인 힘이 된다. 우리 삶에 그러한 것처럼 소설에도 역시 그러하다. ‘우리의 밤이 시작되는 곳’은 장례식장 아르바이트를 하는 ‘나’와 마리의 관계를 중심축으로 펼쳐지는 청춘소설이다. 죽음의 이미지가 압도하는 장례식장을 배경으로, 서울 밤의 시내를 풍경으로 세계를 스케치하는 이 소설은 청춘의 막막함과 외로움을 군더더기 없이 표현하는 가운데 여백의 미를 보여 준다. 무엇보다 여백으로 하여금 스스로 말하게 한다. 맥도날드 순례나 밤의 시내의 돌아다니는 장면들이 펼쳐질 때마다 순식간에 인물들이 움직이는 그 시간과 장소로 이동했다. 소설이 시작할 때 죽음은 가볍고 청춘은 무거워 보였다. 그러나 소설이 끝났을 때 죽음은 무겁고 청춘은 가벼워 보였다. 누군가에게는 그 반대였을 것이다. 무게감 있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밤이 시작되는 곳’은 이 시대를 흐르는 공기의 무게를 가늠하는 기준으로 손색이 없다. 심사위원 : 강영숙·권지예·박혜진·은희경·정홍수·최원식·하성란(가나다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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