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외자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중에서도 한국에 들어온 타자 이야기, 정확하게는 탈북자가 그 대상이었지요. 그들은 남한 사람인데도 남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없는 불안정한 존재입니다. 그 상황을 살인사건과 가상현실의 리니지게임, 백석의 시를 섞어서 이야기로 만들어볼 수 없을까 고민하다 만들어낸 작품입니다.” 지난달 28일 상기된 표정으로 세계일보 편집국에 나타난 1억원 고료 세계문학상 7번째 주인공 강희진(47)씨. 프레스센터에서 9명의 심사위원들이 긴 논의 끝에 ‘유령’을 당선작으로 뽑은 직후 전화를 걸었을 때, 그는 두만강 너머 오지에서 들려오는 바람소리처럼 끊어질 듯 이어지는 허스키한 목소리로 응답했다. 나중에 확인한 사실이지만, 서울 신촌에 사는 강씨는 마침 고향 삼천포(현 행정구역명은 사천인데 그는 굳이 이 지명을 고집했다)로 내려가는 고속열차에 타고 있었다.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알았는데 정작 두만강 너머에서 탈북자 가족들이 남한과 통화할 때의 음질은 중국 휴대전화를 사용하기 때문에 평소 통화 상태와 전혀 다르지 않다고 했다. 당선작 ‘유령’의 화자는 북에서 나와 중국에서 2년간 살다가 남한에 들어와 대학까지 나온 청년. 온라인 게임에 빠져들어 살아가는 그를 중심으로 주변 탈북자들의 사연이 오버랩되는데 이 과정은 완전한 공동체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백석의 ‘모닥불’이라는 시, 남한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탈북자들의 향수, 그들의 삶과 죽음, 게임에 미쳐 현실과 가상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는 탈북 게임 중독자들, 실제로 온라인 게임 리니지에서 일어나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츠 해방전쟁’과 연계돼 시종 숨 막히게 흘러간다. “한국은 타자에게 너무 잔인한 나라입니다. 섬나라인 일본과도 달라요. 하지만 막상 타자들은 우리가 필요해서 부른 사람입니다. 이주노동자 없이 한국은 작동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 남한 사회는 밀려오는 타자들, 국외자들을 어떻게 한국인으로 녹여서 살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강희진씨는 처음에는 당선통보가 거짓말인 줄 알았다고 했다. 지난 10년 동안 유수의 문학상에서 매번 최종심까지 올라갔지만 마지막 단계에서 늘 고배를 마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오래전부터 국외자들에 대해 관심을 가져왔고 4년 전에는 이주여성에 대한 자료를 축적해 이미 소설을 완성시킨 적도 있다. 강희진씨는 고등학교 때부터 교내 글쓰기에서 문학상을 받기 시작해 대학시절에는 세 개의 대학에서 주최한 상을 받았고 졸업 후에는 KBS 드라마 공모에 당선되기도 했다. 이후 KBS 다큐드라마 ‘그때 그 사건’의 집필을 맡아 사형수 오휘웅·두밀분교·메이퀸·카사노바 사건 등의 사건과 재판 과정을 드라마로 재현함으로써, 소설가로서의 밑바탕을 탄탄하게 다졌다. “거대담론의 시기는 끝났다고 하는데 사실은 끝난 게 아니라 내면화된 겁니다. 북한은 물론이고 남한조차도 지난 시절 오랫동안 카리스마적인 독재에 시달리다 보니 그 트라우마가 다른 시대에 사는데도 불구하고 무의식을 지배하는 꼴이지요. ‘유령’도 바로 그런 이야기입니다.” 남한에 온 탈북자들은 교회에 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교회에서 경제적으로 베풀어주는 이유도 있지만 뿌리 깊이 뇌에 박힌 ‘철심’ 때문이라고 강씨는 말한다. 김일성 대신 야훼, 김정일 대신 예수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는 것이다. 찬송가를 부르다가 무의식적으로 김일성장군의 노래, ‘적기가’(赤旗歌)를 부르는 소설의 인물은 게임 세계의 ‘바츠 해방전쟁’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처절한 복수에 나서게 된다. 처음에는 더듬거리는 말투로 어눌하게 말을 꺼내던 강씨는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목청이 높아지기 시작하더니 말의 속도도 무척 빨라졌다. 그가 지금까지 써놓은 장편소설은 최종심에 올라갔던 작품들을 포함해 적어도 7편 이상은 됨 직했다. 이번 당선으로 이 소설들을 출판할 기회가 마련될 것이라는 사실이 무엇보다 기쁘다고 그는 말했다. 이번 소설은 온라인 게임의 가상현실이 문학으로 정색을 하고 진군한 사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에게 대한민국 사회에서 게임의 가상현실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묻자 다소 과격한 답변이 돌아왔다. “소설에 충분히 묘사한 것처럼 단지 온라인 게임이나 가상현실이 아니라 그것은 우리의 현실 그 자체입니다. 우리의 현실이 그만큼 척박하다는 말입니다. 남한은, 대한민국은, 또 다른 현실이 필요합니다. 그게 없다면 아마 우리는 미쳐 버릴지 모릅니다.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도 그런데, 하물며 이방인이라면 어떨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