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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인간의 삶에 기여해야 … 구원을 위해 글을 쓴다"


수상자 조영주(37)씨는 이내 놀란 마음을 추스르고 당선 사실을 거듭 확인했다. 조씨는 알고보니 숭실대 문예창작과를 나와 윤해환이라는 필명으로 활발하게 작품활동을 펼쳐온 추리작가였다. 단편 ‘귀가’로 2회 KBS 김승옥문학상 신인상 우수상도 받았다. 콘텐츠진흥원 원작소설 창작과정에 선정되기도 하고 예스24e-연재 공모전에서도 우수상을 받아 장편을 연재했다.

수상작 ‘붉은 소파’는 연쇄살인 과정에서 딸까지 희생된 주인공 사진작가가 살인 현장 사진을 찍으면서 사이코패스와 대결하는 이야기다. 사진을 매개로 차례로 범인을 찾아내고 치유를 향해 나아간다. 독일 사진작가 호르스트 바커바르트의 사진집에서 영감을 받은 ‘붉은 소파’가 중요한 소도구로 등장한다. 주인공은 특별한 추억이 삼투된 붉은 소파를 세 번에 걸쳐 바꾸어 들고 다니며 그 위에 다양한 사람들을 앉히면서 긴장을 고조시켜나간다. “살인과 사진 그리고 비밀을 퍼즐 조각처럼 흩어두고 집중력 있게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해” 나가면서 “살인, 사진, 실종, 기억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흐름이 흥미의 끈을 놓지 않으며 끝까지 독자들과 지적인 게임을” 하는 작품이다.

“중학교 때부터 만화가이자 스토리작가인 아버지랑 같이 이야기를 썼어요. 아버지가 엉망진창 써놓은 글을 컴퓨터를 쓰지 않을 때니까 제가 대신 정서해서 용돈을 받았어요.?아버지랑 야구장에 가서?이현세 허영만 아저씨들도 만났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제 주변에는 만화가들밖에 없었어요.”

부친 조강타(61)씨는 영주씨 소개에 따르면 만화보다는 ‘특A급 스토리작가’로 더 각광을 받아왔다. 근년에는 독도와 명성황후에 관한 장편 ‘섬 799 805’와 ‘황후의 칼’도 펴냈다. 2010년 종로에서 소설 홍보 전단지에 천원짜리 지폐를 붙여 뿌려 화제가 되기도 했던 인물이다. 성장기부터 이야기 속에 살아온 영주씨는 일본 드라마 마니아이기도 했다. 일본 드라마 자막도 만들고 리뷰하는 블로그를 5년 동안 운영하다 방문자들이 많아 귀찮아져서 지난해 5월 폐쇄하고 글쓰기에 집중한다고 한다. 그네는 14년차 바리스타이기도 하다. 낮에는 강남의 커피 체인점 두 군데를 돌며 바리스타로 일하면서 틈만 나면 좋은 작품을 필사하고, 주로 주말에 소설 쓰기에 집중하는 편이다. 소설을 쓸 때는 아침에 일어나 구상이 흐트러질까봐 세수도 하지 않고 종일 초집중을 한다.

“20대 후반까지 어떤 소설을 써야 할지 방황하다가 추리소설이 저에게 제일 어울린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최종심에 오르거나 호평을 받았던 작품들이 돌아보니 모두 그런 쪽이더군요. 결정적으로는 20대 후반에 일본의 전설적인 미스터리 작품들을 접한 뒤 완전히 신념을 굳혔습니다.”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를 읽고 감동받은 뒤 사회성 짙은 추리소설로 잘 알려진 마스모토 세이초(1909~1992)에 매료됐다고 한다. 한국 추리소설 역사가 100년이 넘는데 최초의 추리소설작가가 김내성(1909~1952)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가 많다는 사실을 알고 집필한 김내성과 홈즈가 만나는 이야기가 2011년 대한민국 디지털작가상 우수상을 받은 장편 ‘홈즈가 보낸 편지’이다. 그는 자신이 써온 소설들은 지금까지 대부분 인물들의 ‘구원’을 향해 나아가는 공통점이 있다고 했다.

“문학은 인간의 삶에 기여해야 한다는 소설가 조정래 선생의 말을 좋아해 그 말이 새겨진 텀블러를 들고 다닙니다. 소설이 현실과 동떨어지고 삶에서 치유의 역할을 하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문학이 인간의 이야기라면 제가 쓴 작품에 걸맞은 삶의 태도, 그런 각오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추리소설 작가에 갇히지 않고 세계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이른바 ‘순문학’ 독자들과도 폭넓게 만날 계기를 마련한 그는 “백석 시인의 ‘흰 바람벽이 있어’를 접한 뒤 고독한 인간의 숙명을 긍정하게 됐다”면서 “이 시를 표제로 써놓은 소설도 있다”고 밝혔다. 그러고 보니 처음 만났을 때 그가 건넨 명함 뒤편에도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 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로 이어지는 그 시편 제목이 굵은 글씨로 새겨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