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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한 이야기는 싫어… 문장 짧게 쪼개 리듬 입혔죠”


"지루하게 쓰는 건 싫어요. 문장을 일부러 미니멀하게 쪼개서 리듬이 느껴지게 하는 데 굉장히 신경을 쓰거든요. 성격상 차분한 문장 읽는 거 좋아하지 않아서 책도 많이 보지 않아요. 영화도 거의 안 봐요. 내가 선택한 영화가 재미있을지 없을지 모르는데 두 시간이나 어떻게 앉아 있어요? 나 같은 사람도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쓴 겁니다.”

열네 번째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자 박형근(37)은 양쪽 귀에 검은색 티타늄 피어싱을 매달고 편집국에 나타났다. 건장한 체격과 굵은 얼굴선에서 만만치 않은 에너지가 느껴지는 인상이다. 대상 수상작 ‘스페이스 보이’는 얼핏 랩 같은 소설이다. 짧은 문장들이 잦은 행갈이와 함께 리듬를 타고 이어진다. 이런 호흡으로 200자 원고지 800장에 육박하는 장편을 한 줄에 꿰어낸 사실이 이채롭다. 우주에 다녀온 한 남자가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서 마지막으로 속물적인 현실과 타협할지 고민하는 이야기다.

“우주에 갔지만 사실 외계인에 의해 자신의 뇌를 실험당한 것이죠. 우주는 지구와 똑같은 환경이었고 그건 자기의 기억이에요. 이 친구는 어렸을 때 전자기타를 쳤는데 우주에서 그 기타를 칠 때마다 숲이 형상화되죠. 뉴런과 뉴런 사이 전기 자극으로 신호를 주고받는 뇌처럼 기타를 칠수록 세계가 확장됩니다. 그는 진짜 우주 생활을 한 게 아니라 그 자극으로 다시 찾아낸 기억 속에서 사랑을 보게 되는 거죠.”

소설 속 남자는 우주에서 샤넬의 전설적인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라는 이름의 외계인을 만난다. 외계인은 존재하지만 뛰어난 문명으로 지구인에게 드러나지 않을 따름이라는 ‘페르미 패러독스’의 세 번째 가설을 남자는 믿는다. 외계인은 남자의 뇌 속을 디자인하면서 지구로 돌아갈 때 어떤 상태로 기억을 남겨둘 것인지 거래를 한다. 사랑에 대한 기억을 되찾아 돌아온 남자는 지구에서 스타가 되지만 끝내 그 사랑을 되찾을 것인지는 독자들이 읽어야 할 몫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책 제목만 보고 독후감을 써내도 상을 받았고, 이후 특별한 독서 경험도 없는데 글만 쓰면 인정을 받아 실기만 보고 뽑는 서울예술대 문예창작과에 ‘우연히’ 들어갔으며, 대학 시절에도 특별히 글쓰기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그는 툭툭 던지듯 말했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밴드에서 기타를 쳤고 축구 보는 걸 즐겼다. 굳이 읽은 소설들을 꼽으라면 특별히 좋아하진 않지만 무라카미 류나 하루키와 대학시절 자신의 롤모델이었던 ‘파이트 클럽’의 미국 작가 척 팔라닉 정도를 거론할 수 있다고 했다. 성장기에 글쓰기보다 뭔가 일을 꾸미는 걸 많이 했는데 이런 행위를 언어로 옮기면 그대로 소설이 되는 것 아니냐고 그는 반문한다. 이번 수상작에서도 철학자 비트겐 슈타인의 “언어의 한계가 사물의 한계”라는 논리를 요긴하게 활용한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언어가 인간 그 자체라고 생각하거든요. 언어 밖으로 나가면 기억에 저장되지도 않아요. 언어체계로 편집돼서 저장되거든요. 이 소설을 쓰면서 뇌의 기능에 대해 많이 알게 됐죠. 사실 이 소설 주인공에게 사랑은 어쩌다 접하는 것이고, 어쩌다 끝나는 것이에요. 사랑이 거창한 건 아녜요.”

2011년 한국디지털문학대상에 ‘20세기 소년’이 당선돼 작가 타이틀을 얻었고, 그해 ‘네이버 캐스트’에서 신인작가 소개의 일환으로 단편을 청탁했을 때 ‘스페이스 보이’ 시놉시스를 보냈다. 이후 특별히 글쓰기의 비전이 보이지 않아 친구와 인터넷쇼핑몰을 운영하다 지난해 봄, 아침에 일어나는 정상적인 리듬을 회복하기 시작하면서 이 소설을 6개월에 걸쳐 장편으로 완성해 처음 응모했다. 부모에게도 아직 수상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는 쿨한 ‘20세기 소년’도 ‘스페이스 보이’ 말미에는 “이 엿 같은 지구를 돌아가게 하는 건 사랑”이라고 썼다.

“정작 바로 곁에 있는 20~30대 우리 이야기를 담은 소설은 없는 것 같아요. 힐링 서적은 많지만 어떻게 살아가라고 가르치는 게 아니라 우리 삶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사실 힐링이 되거든요. 진짜 생생하고 잔인한 20대 청춘 이야기를 써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