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정순식의 인생엔 세 개의 붉은 소파가 등장한다. 첫 번째 붉은 소파는 정순식에게 사진이란 이름을 주었고, 두 번째 붉은 소파는 정순식의 삶에서 사진을 빼앗았고, 세 번째 붉은 소파는 정순식에게 다시 한 번 사진의 길을 걷게 만들었다. 이 이야기는 그 모든 붉은 소파의 추억담이다. 정순식, 그는 디지털이라는 시류를 따르지 못한 퇴물 사진작가다. 월세도 내기 힘들겠다고 염려하던 정순식에게 오랜 시간 연락이 끊겼던 제자로부터 짭짤한 보수의 일거리가 들어온다. 그런데 이 의뢰가 수상하다. 어디로 와라, 가라 하는 이야기도 정확하지 않다. 어떤 걸 찍느냐, 물었더니 알 수 없단다. 대충 인물사진이라는 어중된 대답이다. 뭔가 예감이 좋지 않지만 정순식은 일단 받아들이기로 한다. 매일 아침 아홉 시에 출근해서 일력 한 장을 뜯고는 할 일이 없어 빈둥대는 일상보다 안 좋은 일이 무엇이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정순식의 생각은 틀렸다. 이것은 자신이 생각한 안 좋은 일의 수준을 한참 뛰어넘었다. 제자가 소개시킨 일은 살인사건의 현장 사진을 찍는 일이었다. 그것도 피해자, 시체 사진을! 무슨 까닭인지는 모르겠으나 경찰에서는 시체 사진을 전문으로 찍는 사진작가를 구했다. 제자는 그 일에 자신의 스승인 정순식을 추천했다. 물론 정순식은 돈이 궁하다. 하지만 이런 일을 할 정도로 몰락하지는 않았다. 정순식은 이 상황을 빠져나가고 싶다. 아무래도 이건 아니다 싶다고 생각하며 뒷걸음질 치려는 순간, 셔터를 누른다. 그리고 정순식은 그동안 잊었던 현장의 감각을 되새긴다. 살인사건, 범인이 누군지 알 수 없는 그곳에 남긴 흔적과 그 흔적을 담은 가장 큰 증거인 피해자의 모습에서 정순식은 자신만이 볼 수 있는 것을 발견했으니, 그것은 사진작가의 눈에만 보이는 아주 미세한 단서였다. 그 단서를 통해 정순식은 이 사건의 범인을 잡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 능력을 인정받아 다른 사건도 맡게 된다. 눈앞에서 증발한 추락사의 진실, 오래전 사라졌던 엄마의 귀환, 42년 전 찍은 필름의 미스터리… 정순식은 차례로 사건들을 해결한 끝에 마침내는 지금껏 애써 무시하려 했던 15년 전 사건의 진상과 맞닥뜨린다. 정순식 곁에는 든든한 지원군인 현직 여형사 나영과 감식반 기혁, 전직 형사이자 현재는 실종 전문 탐정인 태종, 그리고 자신에게 경찰과 관련된 일거리를 준 제자 재혁과 함께 딸 사건의 진상을 파헤친다. 삶의 우여곡절 끝에서도 보이지 않는 여섯 번째 손가락인 양 늘 들고 다녔던 카메라, 그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며 자신이 왜 지금껏 사진을 찍어왔는지, 그에게 있어 최초의 사진은 무엇이었으며 앞으로 찍게 될 사진은 무엇인지, 정순식은 이 모든 수수께끼의 진상을 늘 곁에 두었던 붉은 소파에서 찾는다. 세 개의 붉은 소파, 그것은 사진작가 정순식의 삶을 깊게 관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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